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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2 누가복음 10:25-42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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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걸작품 작성일 20-02-12 05:46 조회 16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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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2 누가복음 10:25-42 찬송 453장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 P224
한 율법사가 등장합니다. 그는 유대 율법에 관하여 전문가입니다. 그가 일어나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합니다. 현재 예수님께서 계신 공간에 여러 사람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율법사의 질문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고 물으시면서 율법사의 질문에 율법으로 대응을 하셨습니다. 율법사는 자신 있게 율법에 적혀 있는 대로 대답합니다.

27절.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율법사가 대답하고 있는 이웃이라는 단어는 유대적 어법상 집단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웃이라는 단어를 동족, 같은 종교권에 있는 사람, 같은 유대인을 말합니다.

따라서 사마리아 사람들, 이방인들은 이웃이라는 단어의 범주에서 아예 제외를 시켰습니다.

답변을 들으신 예수님은 율법사가 대답한 그대로 행하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사의 삶은 배우고, 아는 것, 가르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계 1:3 이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깝다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켜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선명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성령공동체임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율법사가 질문한 물음의 저의와 위선을 알고 계셨습니다.

율법에 정통하다고 자부하는 율법사는 자신의 질문이 어리석은 것으로 드러나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옳게 보이고 싶어서 또다시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눅 10:33-34.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강도 만난 사람 곁을 하나님과 백성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구별된 제사장과 레위인이 지나갔지만, 그들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유대 종교적 특권층에 속한 사람들로 마땅히 모범이 되어야 했음에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제사장이나 레위인에게는 돕지 못할 이유나 핑계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과는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그냥 떠나가 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여행 중에 있던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들에게 사람 취급(개 취급)도 받지 못하는 부류에 속했습니다.

예수님은 천대받는 사마리아 사람을 등장시키심으로 교만하고 완악한 유대주의자들과 강한 대조를 이끌어내고 계십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자신의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돌보다’라는 단어는 딤전 3:5에서 교회를 돌보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자를 사랑과 책임감으로 돌보아주었습니다. 2개월간 동안 머물 수 있는 숙박비, 데나리온 둘을 주막 주인에게 주면서 부족하면 더 주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일시적이거나 충동적인 동기가 아니라 끝까지 완전하게 책임 의식을 가지고 행한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은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냐고 질문하십니다. 율법사는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라고 대답해야 했음에도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유대인들의 고정개념을 깨고, 원수처럼 여기는 사마리아 사람도 이웃이 될 수 있다고 하셨지만, 율법사는 여전히 이웃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사를 향해 ‘가서 너도 이와(사마리아 사람) 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너무도 단순하고 명료하셨습니다.

우리의 이웃은 내가 결론짓고 있는 범주에 있는 사람 너머에도 있습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 빈부귀천, 종교와 인종을 초월한 사람들까지도 우리의 이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적용/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를 도와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번에는 나의 비용이 들어가도 내가 가서 도와주어야 할 이웃은 누구입니까? 나도 가서 이같이 해야 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함으로 염려와 근심이 있었고,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아래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습니다.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르다가 얼마나 분주했고, 마리아는 어떤 심정으로 예수님의 곁에 앉아 있었을지도 상상이 갑니다. 급기야 불편한 마음을 토로하는 마르다를 향해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41-42.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르다의 이름을 두 번에 걸쳐 부르는 이중 호격을 사용하신 것은 에수님이 마르다의 정성스런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동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계셨음을 암시합니다.

염려한다 표현은 흩어지다, 나누어지다라는 뜻, 과도한 욕구로 인해 어지럽게 분열된 심적 상태를 나타냅니다. 근심한다는 것은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뜻으로 자기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적용/내가 현재 분주함 속에 빠져있다면 그 분주함의 진짜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 나의 염려와 근심은 무엇입니까?

말씀이 기초가 되지 않은 분주함은 자신을 염려하고 근심하게 할 뿐입니다. 말씀이 내면에서 살아 움직일 때 우리는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과 이웃을 섬기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진정 우리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질문만 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내 기준에 맞는 사람만 내 이웃이 아니라 인종을 넘어 사랑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오늘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만나는 이웃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과도한 욕심을 내려놓고, 내가 세워놓은 기준대로 하나님을 섬기기에 조급함으로 근심과 염려에 쌓여있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주께서 주신 은혜 안에서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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