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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6 누가복음 9:28-36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1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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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걸작품 작성일 20-02-06 05:45 조회 16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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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6새벽 누가복음 9:28-36 찬송 28장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196p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명의 제자를 데리고 헐몬산으로 올라가십니다.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하고 옷에서 광채가 납니다.

28-29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이 말씀을 하신 후란, 예수님이 자신이 겪을 고난과 죽음, 부활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후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세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산에 가신 이유가 중요합니다. 산에 가신 이유는 하나님과 대화의 시간을 갖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는 중에 용모가 변화되었고, 하나님의 영광된 모습으로 나타나시게 되었습니다. 마태는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났다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하실 때, 일어났다.

예수님의 용모가 영광스럽게 변화된 사건은 수난과 죽음을 겪으신 후,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되실 예수님의 영광과 또 재림에서 실현될 영광을 예시해주는 것입니다.

문득 두 사람이 나타났는데, 이 두 사람은 수백 년 전에 죽어 이미 천국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를 대표하는 두 사람,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셨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자신이 장차 당할 십자가 죽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31절.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여기서 우리말 ‘별세’로 번역된 헬라어는 ‘엑소더스’입니다. 출애굽기가 엑소더스입니다. 탈출입니다.

마치 모세가 애굽의 노예생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켰듯이, 예수님 또한 죄와 사망의 그늘로부터 만백성을 구원하시고 해방시키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게 될 것이란 뜻입니다.

적용/예수님의 엑소더스(탈출)을 내 삶 가운데 적용하여 봅시다. 내가 탈출해야 하는 요소들을 무엇인지를 점검해 봅시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

졸던 베드로는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죽음에 대해 논하실 때, 잠에서 깨어납니다.

32절.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곤하여 졸았다는 것은 예수님이 기도하신 지 오래되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졸다가 중요한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고 상황을 곡해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잠에서 깬 베드로는 이 광경을 보고 초막 셋을 짓자고 제안을 합니다. 주를 위하여, 모세를 위하여, 엘리야를 위하여,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자입니다.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입니다. 모세는 과거에 시내산에서(출 31:18), 엘리야는 호렙산에서(왕상 19:8) 각각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습니다.

엘리야는 죽지 않고 승천하였고(왕하 2:11), 모세 또한 특이한 방식으로 죽어 그 시신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신 34:6).
율법과 예언으로 말하고 전해지던 구약이 예수님에 의해 복음으로 완성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모세와 엘리야의 사역은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와 엘리야의 모습에 취한 베드로는 여기가 좋다고 합니다.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겪어야 하는 고난과 그 이후의 영광을 망각하고 현실에 안주하기를 도모하는 비신앙적 태도라 할 수 있다. 우리도 안주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 자신도 자기의 하는 말을 알지 못하였다고 누가는 전합니다.

적용/나는 세상의 어떤 모습과 유혹때문에 넋을 잃고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은 산 위와 산 아래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교회 내에서나 교회 밖에서도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성도의 믿음은 산 위에서는 물론, 산 아래서도 지속되어야 합니다.

산 위에서 기도만 하는 것도, 산 아래에서 일만 하는 것도 적절치 않습니다. 당신은 산 위에 머물고만 있습니까? 산 아래에서만 살고 있습니까? 자신을 스스로 점검해 봅시다.

35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마 17:5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좀 더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랑받는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라, 이 명령은 예수님의 정체가 분명히 드러난 이상 예수님의 말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자신의 아들로 분명히 밝히시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따르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하여튼 본문에서의 강조점은 제자들의 순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을 통해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3)

결국, 본문에서는 모세와 엘리야가 사라지고 ‘오직 예수만 보이시더라’ 말씀합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의 그림자 역할 만을 감당한 인물들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라고 하는 구약의 위대한 두 인물도, 결국은 예수님의 정체를 보여주는 보조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사라질 뿐 주인공은 오직 예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만' 남아 있음이 '오직'이란 뜻의 '모노스'로 강조되고 있다(모노드라마). 우리의 삶 가운데, 삶의 결말에 오직 예수의 흔적, 예수만 남아 있기를 축복합니다.

적용/성도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수를 중심으로 살아야 하며, 예수를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이곳 교회, 기도의 언덕에서 나를 향한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믿고 맡겨주신 거룩한 사명을 다시금 되돌아봅니다. 나의 삶이 고단한 인생 속에서 눈물 닦고 우는 일로 참 버거운 삶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고, 나 또한 그리 살길 원하시니 나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담대하게 걷게 해주시옵소서. 나를 예수님의 손발 삼아 이 땅을 위로하고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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